■ 이전
▶ 785
제37대 선덕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나자,
▶ 군신들은 김주원을 차기 왕으로 정했으나, 김주원이 경주로
오던 중 폭우로 알천이 범람해 도착하지 못했음.
▶ 이를 하늘의 뜻으로 해석한 신하들의 제안으로
김경신이 왕으로 추대되어
제38대 원성왕이 됨.
▶ 그리고
왕위 계승에서 밀린 김주원은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명주(현 강원도
강릉)로 물러남.
▶ 809
제41대 헌덕왕이 즉위한
이후,
▶ 소수 귀족 중심의 정국 운영과 잦은 자연재해로
사회 불안이 심화하면서 민심이 돌아섰음.
■ 김헌창의 난
▶ 822년 3월 웅천주(웅주, 지금의 충청도 일대)도독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국호를 장안으로 정함.
↘ 그러나 실제로는 지방관직을 전전한 데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반란의 핵심 배경으로 해석됨.
▶ 김헌창의 난에는 무진주(무주, 지금의
전라남도 일대)와 완산주(전주, 지금의 전라북도 일대), 청주(강주,
지금의 경상도 서부 일대), 사벌주(상주, 지금의 경상북도 북부 일대)가
가세하였고, 국원경, 서원경, 금관경을 비롯한 여러 군현이 참여하면서
반란은 전국적 규모로 확산했음.
- 반면,
한산주(한주, 지금의 경기도·황해도·강원 등)·우두주(우수주·삭주,
지금의 강원도 영서 지역)·삽량주(양주, 지금의 경상도 동부 일대)와
패강진·북원경 등은 사전에 반란을 인지하고 방어에 나섬.
□ 반란의 진압
▶ 신라 조정은 즉각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격퇴한
뒤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시)으로 진격해 결전을 벌임.
▶ 결국
패배한 김헌창은 농성 끝에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고, 반란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진압됨.
▶ 이후 그의 추종 세력 239명이
처형됨.
■ 이후
▶ 825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이 도적 세력과 함께 북한산주(한산주 북부, 지금의
서울 북부)를 공격하며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됨.